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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재, 한국 발레의 새로운 전설!

박윤재, 한국 발레의 새로운 전설!
출처 : 뉴시스

박윤재, 스위스 로잔 발레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 남성 우승

인천공항에서 밝은 표정으로 귀국한 16세 발레리노 박윤재는 스위스 로잔 발레 콩쿠르에서 한국인 남성으로서는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 주인공이다. 그는 세계 5대 발레 콩쿠르 중 하나로 꼽히는 로잔 발레 콩쿠르에서 1위를 기록하며 한국 무용사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우승의 기쁨과 예기치 못한 결과

박윤재는 “(스위스에) 갈 때는 떨린다기보다 기대가 됐는데, 올 때는 후련한 마음에 발걸음이 가벼웠던 것 같아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우승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전하며, “애초에 파이널에 올라갈 거란 생각도 못했다. 우승까지 하게 돼 정말 놀라서 상을 받았다”고 수줍게 웃었다.

축하의 물결

박윤재의 우승 소식은 한국 전역에 퍼지며 연일 축하 인사가 쏟아졌다. 그는 “너무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셨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많은 축하가 와서 매일 바쁘게 답장하고 있고, 정말 감사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로잔 발레 콩쿠르는 15세에서 18세의 학생만 참여할 수 있어 ‘차세대 스타’ 발굴의 장으로 알려져 있다. 입상자들은 장학금을 받고 주요 국제 무용 학교에서 공부하거나 연계된 해외 발레단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유학과 더 큰 목표

박윤재는 어릴 적부터 동경하던 콩쿠르에서 정상에 서며 더 큰 목표도 마음에 품었다. 그는 제의를 받은 학교 중 한 곳을 택해 유학을 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포부를 묻자 “반짝반짝 찬란하게 빛나는, 관객과 소통이 잘 되는 무용수가 되고 싶다”고 답하며 그의 눈이 반짝였다.

가족의 자랑스러운 순간

박윤재의 아버지 박종우 씨와 어머니 이휴희 씨는 아들을 기특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한국에서 생중계로 콩쿠르를 지켜본 이 씨는 아들의 우승 당시를 회상하며 “실감이 안 나서 눈물도 안 나더라. 윤재 아빠가 혼자 울었다”며 웃어보였다. 부부에게는 박윤재가 어리지만, 누구보다 든든한 아들이라고 한다.

발레에 대한 열정

박 씨는 “발레 쪽으로는 한 번도 걱정시킨 적도 없다. 본인이 열심히 하고, 욕심도 많다. 윤재가 제일 고생이 많았다”며 “참 어른스럽다. 엄마가 걱정할까봐 힘든 것도 잘 표현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박윤재는 발레를 하던 누나 박윤지 씨를 따라 무용을 시작했다. 이 씨는 “(윤재가) 다섯 살에 누나를 따라 처음 발레 학원을 갔다. 매일 밤늦게까지 춤을 춰서 그만 자라고 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전공으로의 전환

취미로 발레를 접한 박윤재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되자 발레를 전공으로 하고 싶어했고, 이듬해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산하의 한국예술영재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발레를 공부했다. 아들은 어릴 적부터 ‘영재’ 소리를 들으며 쑥쑥 컸지만 곁에서 그 과정을 지켜봐야 하는 가족들의 마음은 복잡했다. 이 씨는 힘들어하는 아들을 보며 발레를 그만 두라는 권유도 여러 차례 했다고 전했다. “뼈를 갈아서 하는 것 아닌가. 몸이 다 망가지는 것 같아 너무 안쓰러웠다”고 말했다.

열정의 결실

그러나 박윤재는 발레에 대한 열정을 내려놓지 않았다. 지난해 영재원을 그만두고 로잔 콩쿠르를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아버지 박 씨는 “어느 순간 윤재가 자기의 춤을 잃어갈 때가 있었지만, 이번에 가서 하는 걸 보니 많이 변했더라. 윤재도 정말 신나서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미래에 대한 바람

어머니 이 씨는 “훌륭한 무용수, 세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무용수도 좋지만 결국 자기가 만족해야 한다. 발레를 계속한다면 그저 안 아픈 무용수가 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박윤재의 우승은 단순한 성과를 넘어, 그의 가족과 한국 무용계에 큰 의미를 지닌다.

박윤재의 여정은 이제 시작일 뿐이며,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그의 열정과 노력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다. 한국 무용계의 미래를 밝힐 박윤재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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