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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정보라 작가(49)가 그의 소설집 ‘너의 유토피아’로 세계 3대 SF 문학상 중 하나인 필립 K. 딕상 후보에 올랐다. 이번 후보 선정에 대해 정보라 작가는 “한국 이외의 다른 SF 공동체에서 관심을 보여주셨다는 사실이 굉장히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영어로 출간된 출판사에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에 모두가 기뻐해 주었고, 이로 인해 ‘아주 못 쓴 건 아니구나’라며 조금 으쓱해졌다고 전했다.
정보라 작가는 “개정판이 출간된 직후라서 겹경사”라며, “굉장히 흥분해서 4월 시상식에 가기로 했다”고 들뜬 설렘을 가감 없이 전했다. 그러나 수상 가능성에 대해 묻자, 그는 의외로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는 작가가 직접 1983년부터 2024년까지의 수상자 면면을 분석한 후 내린 결론이라고 밝혔다.
정보라 작가는 “1983년부터 2024년까지 41년 동안 번역작이 오른 경우가 일본 작품 한 번이었는데 장편이었다”며 “번역작이면서 단편집인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소설집 ‘너의 유토피아’는 2021년 출간된 소설집 ‘그녀를 만나다’의 개정판으로, 총 8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표제작인 ‘너의 유토피아’를 비롯해 ▲영생불사연구소 ▲여행의 끝 ▲아주 보통의 결혼 ▲One More Kiss, Dear ▲그녀를 만나다 ▲Maria, Gratia Plena ▲씨앗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모든 작품은 작가가 2010년부터 2021년까지 대학 강사로 재직하던 시기에 쓴 이야기들이다.
정보라 작가는 SF를 다루는 수업에서 영향을 받아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그는 “수업의 큰 주제가 인간, 인간성, 자아란 무엇인가였는데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유기적으로 내린 결론이 인간성은 정의할 수 없고 추가할 수만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인간을 어떠한 동물이라고 정의하기 시작하면 점점 배제하게 된다”며 “인간은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다’처럼 넓혀가는 게 현실에 더 맞다”고 덧붙였다.
표제작인 ‘너의 유토피아’는 전염병으로 인해 인류가 떠난 황량한 행성에서 고장 난 인간형 로봇 ‘314’를 태워 돌아다니는 스마트카의 이야기를 그린다. 정보라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은 유토피아와 맞지 않아요. 인간이 유토피아를 만들 수 없고 만들더라도 금방 망할 거예요. 왜냐하면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완벽한 세계를 유지하거나 관리할 능력이 없어요”라고 주장했다.
정보라 작가는 유토피아를 조금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짚었다. 그는 “좀 더 나아지려고 함께 노력하는 과정이 유토피아일 뿐”이라며 “유토피아를 만들겠다는 망상 자체를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수록된 작품 중 ‘그녀를 만나다’를 가장 마음에 남는 작품으로 꼽았다. 이 작품은 트렌스젠더를 향한 차별과 혐오로 생을 마감한 변희수 하사를 모티프로 삼았다.
‘그녀를 만나다’는 변희수 하사를 모티프로 삼아 현실과 정반대의 상황을 설정하고 있다. 성 확정을 마친 후 군대로 돌아가 복무하면서 저술 활동과 음악 활동을 병행하는 ‘그녀’의 팬미팅에 참석했다가 혐오 세력의 폭탄 테러를 당한 어느 할머니의 사연으로 구성됐다. 정보라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변 하사님 돌아가시고 나서 직후에는 다른 걸 전혀 생각할 수가 없어서 제일 좀 아픈 손가락”이라며 “사회적, 시기적인 배경 때문에 제일 안타까운 이야기”라고 말했다.
작품 속 ‘그녀’는 성확정을 마친 후 다시 군대로 돌아왔으며, 그녀의 상관들과 새롭게 함께 생활하게 된 동료들은 그녀가 남군 막사에서 여군 막사로 옮겨 왔다는 사실을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그녀는 군 생활이 허용하는 한 음악 연주도 계속했고, 군대 내의 성소수자들을 위해서 활동하며, 그렇게 활동하다가 만난 사람과 결혼하고 딸을 입양했다.
정보라 작가는 SF 장르의 매력에 대해 “SF를 쓰겠다고 결심한 적이 없다”면서도 “과학적인 ‘것’만 같은 설명을 붙이면 무슨 얘기든지 다 할 수 있기에 그럴듯하게, 설득력 있어 보이는 힘이 조금 더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그는 차기작에 대해 부모와 친척 등 혈연이 아닌 관계의 인물들이 양육하는 사회를 그려낼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부모가 없어도, 부자든 가난하든 크게 상관없는 사회에서 양육하는 게 정상인 모습을 상상했다”고 말했다.
정보라 작가는 “그 안에서 살인 사건도 일어나고 귀신도 나오고 그래야겠죠. 제가 살인 사건과 귀신을 아주 좋아하거든요”라고 덧붙이며, 앞으로의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